살다 보면 너무 답답할 때가 있곤 합니다.

그럴 땐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란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정말 전생은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업보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하루는 신경수가 돼지 한 마리를 기르다가 도둑 맞고 와서 아뢰기를 "내성이 본시 가난하여 돼지 구할 돈이 없을 터인데, 제 집에서 기르는 돼지를 훔쳐 온 것이 틀림 없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놈아! 내가 시켰다. 그 돼지를 찾지 말라. 네가 전생에 남의 눈을 속여서 손해를 끼쳤으므로 이제 금세에 그 보복을 받은 것이니 분해하지도 말고 아까워하지도 말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 9:126]

상제님께서 밝혀 주신, 전생의 업력이 이생에서 드러난 일화입니다.

전생의 업보는 최대한 참회를 많이 하고 다른 이에게 봉사를 하면 조금씩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전 지금 이생에서의 업보는 어떻게 해야 더 짓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인간의 영적 유동체가 소망 상념인 목적의식을 갖고 한 방향으로 줄달음칠 때, 그 파동이 그대로 쌓이고 맺혀 영혼에 독특한 업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과 입과 뜻으로부터 일어나는 죄를 조심하고 남에게 척을 짓지 말라."라고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업력의 파장 - 우리 자신을 옭아 묶는 죄악의 업력은 고요한 마음의 호수 위에 끓어 오르는 망상에서 비롯되어 마음의 소리를 전하는 '입'을 통해 구체화되며, 자유의지에 따른 행동으로 드러나 굳어져 버립니다. 상제님께서는 '마음과 입과 뜻'으로 드러나는 상념 파동의 상호관계에 대해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산도의 진리 p.248

 

상제님께서는 행동뿐만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죄부터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굴 미워하고 싫어하고 욕을 하는 것 자체가 벌써 척을 지은 것이며 이것은 곧 이생에서의 업을 또 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상극의 세상에서 항상 바른 마음을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제님은 인류에게 태을주를 내려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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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주는 본심 닦는 주문이니 태을주를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깊어지느니라"
 

태을주를 읽으면서 우리는 원래의 신성, 인류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자연과 같은 신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힘들고 지쳤을 때 태을주를 읽어보세요.

"모든 만트라(주문)이나 기도문은 도통한 성자들이 만든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성인이 그 도통 경계에서 천지 생명의 본성을 체험하고 대우주 생명의 바다에 들어가 그곳에서 들려오느 소리를 언어로 압축하여 형상화한 것입니다. 주문은 영적 에너지의 핵을 형성하는 신성한 음절의 조합이며, 우주 생명의 핵을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문 수행을 하면 생로병사로 사라지는 유형의 몸이 아니라, 무변광대한 천지와 같은 진리의 몸으로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나의 참모습입니다. 주문을 읽으면서 비로소 '참 자아'를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증산도의 진리p.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