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인간

1, 우주의 태극성(太極性)

우주에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피조물에 불과할까요, 아니면 무언가 우주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존재일까요? 우선 인간의 존재를 살펴보기 이전에 인간을 낳은 우주의 모습을 먼저 보기로 하겠습니다.

  


1992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태초 우주의 모습을 탐구하기 위해 고성능 센서를 탑재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습니다. 이 위성은 극초단파를 이용하여 우주의 배경복사온도를 재는 게 임무였습니다. 관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된 온도분포는 놀랍게도 완벽한 태극 모양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즉, 음(陰)과 양(陽)이 미세한 온도 차이를 두고 양극성(dipole pattern)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미세한 정보를 큰 온도 스케일로 자료처리를 하면 태극 형상이 보이지 않고(왼쪽 연두색그림) 그저 하나의 동일한 색상으로 표현될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태극과 무극에 대한 개념을 명료하게 깨칠 수 있습니다. 이미 배경복사온도 분포는 음과 양으로 분화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온도 스케일을 미세하게 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서 태극이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겁니다. 온도 스케일이 커져서 밋밋하게 동일한 색으로 보이는 경우가 바로 무극(無極)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즉, 무극이란 이미 음양이 내재되어 있지만 아직 현실로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말하고 태극이란 무극이 현실세계에 질서화 되어 나타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좀 더 쉬운 설명으로 들판에 있는 언덕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 언덕엔 이미 오르막과 내리막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선 그것을 볼 수 없으므로 그냥 혼돈 속의 무극 상태로 인식이 되죠. 그러나 그 언덕에 해나 달이 뜨면 명암이 생기면서 그림자가 생기게 마련이죠. 이 상태가 바로 태극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또한 그 그림자의 크기는 해와 달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고요. 하여튼 우주의 배경복사온도 분포가 태극 형상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러면 우주의 모습은 어떤 형상을 이루고 있을까요? 즉, 궁극적으로 극미(極微)와 극대(極大)의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오늘날 발달된 망원경과 현미경 덕분에 극대와 극미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몸으로부터 시작하여 10배씩 거리를 늘려 가노라면 우리는 극대의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처음엔 그 사람의 모습과 배경이 보이다가 점점 마을, 국가, 지구, 태양계, 은하계의 순서대로 나타나겠죠. 결국에는 우리 은하계마저도 하나의 작은 점으로 보입니다. 반대로 극미의 세계는 우리 신체의 피부로부터 시작하다보면 땀샘, 단백질 분자, 유전자 고리, 원자, 원자핵 단위까지 이르러서 결국 하나의 작은 점으로 나타납니다. 그야말로 극대와 극미의 세계는 동일한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현대 과학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空과 色은 태극을 이루는 2대 본질이죠. 공은 우주창조의 본체로서 잠재에너지가 최대인 것을 말하고 색은 우주운동의 본체로서 공이 물질화된 자리이죠.

우리가 극대와 극미의 세계를 더듬어보지 않아도 주변에는 부분과 전체가 동일한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는 예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나 번개의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살펴보면 양자가 매우 흡사하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양파의 껍질도 그렇고 시금치, 암모나이트 조개 등도 그렇습니다. 이것을 일러서 현대 과학은 프랙탈(fractal) 원리라고 합니다.
공자님도 역계사(易繫辭)에서 ‘근취저신(近取詛身) 원취저물(遠取詛物)’이라고 하였습니다. 공자님의 말씀에는 형상뿐만 아니라 만물의 존재나 운동 특성도 동일한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포괄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우주정신의 활동상태는 볼 수가 없으므로 인간의 정신활동 결과 나타나는 象에서 관찰하고 만물이 율동하는 모습은 만물의 形에서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주와 인간이 동일한 존재 및 운동양상을 지니고 있다는 전제가 이미 바탕에 깔려 있죠. 우리가 바닷물의 특성을 살펴보는 데 모든 물을 맛보아야만 하는 게 아니고 한모금의 바닷물이면 충분하지요.

그러면 우주와 인간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요? 신(神)의 피조물로 태어났으나 타락하여 이 험악한 환경에 내동댕이쳐진 볼품없는 존재일까요, 아니면 우주에서 우연히 생겨나 일생동안 고뇌 속에서 살다가는 영원한 방랑자일까요?

글 : 나영남 국방과학연구소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