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군을 공포로 몰아넣은 거북선의 위력


한때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 잠수함이라고 선전될 만큼 과장되게 알려져 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이후 실증사학이 강세를 나타내면서, 거북선에 대해 갖고 있었던 환상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거북선은 잠수함이 아님은 물론이고, 철갑선이라고 볼 수도 없고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 별다른 활약을 보유주지도 못했다는 의견까지 등장하기도 하였다.

 거북선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주된 근거로는, 우선 거북선이 그렇게 위력적이라면 왜 4년 후 일어난 정유재란에 왜 다시 재작하여 쓰지 않았냐는 것이다. 더욱이 조선 수군의 주력전함인 판옥선의 평균사망자수가 6명 정도였는데 비해, 거북선 두척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는 24명으로 거의 배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근거를 더욱 확실하게 뒷받침 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회의론의 일환으로 35m로 추측되던 거북선의 길이도 점점 더 작아져 급기야는 절반정도인 18m까지 줄어들게 되었다. 사실 거북선에 대해서는 그와 관련된 유물이 현재까지 단 한점도 발견된 적이 없으며, 실측한 자료역시 없다. 한때 거북선에 탑재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던 지자총통이나 천자총통역시 고물상에서 구입한 모조품으로 밝혀진지 오래였다.

 정말 그렇다면 거북선은 일부 회의론처럼, 그저 사망자만 많이 발생시킨 무용지물의 戰船(전선)이었을까? 지금부터 조선왕조 실록에 나와있는 거북선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 보자.

 거북선 기록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태종 13년 1449년이다. 이 때 태종은 임진강 나루터를 지나다가  거북선[龜船] 과 왜선(倭船)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고 나와있다. 아마도 실전을 대비한 훈련으로 보이는데, 거북선의 원형은 고려말엽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태종 15년엔 좌대언(左代言) 탁신(卓愼)도  병제 개혁안을 올리면서 거북선에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거북선[龜船]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

 
이렇게 거북선 제작과 보유에 대한 논의가 조선 초기부터 있어왔지만, 실제 거북선을 해전에 적용시킨 것은 역시 이순신 장군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해인 1591년, 일본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재편성에 따라 전라수군 절도사에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이순신은 2백여 년간 거의 실전경험이 없었던 조선수군을 강화하는 한편, 특수 전선인 거북선 건조에 착수하게 된다.

 이순신장군은 이 거북선을 실제전투에도 유용하게 쓰게 하기 위해, 돛을 개량하여 달고 방포훈련을 하는가 하면 구조자체도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견고하게 만들어 명실상부한 돌격선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이순신 장군은 1592년 5월 29일 사천양해전에서 거북선을 최초 투입, 일본 수군을 공포와 혼란속에 몰아 넣었다.
 그리고 6월 14일에 올린 '당포파왜병장'이란 장계에서 거북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이 일찍이 왜적의 난리가 있을 것을 걱정하여, 따로 거북선을 건조하였습니다.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입으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하여 전선 수백 척 속에라도 뚫고 들어가 대포를 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이러한 이순신장군의 장계에 대해 선조임금도 각별한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1596년 병신년조에 대신들과 함께 왜구 격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거북선에 대해 묻기도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귀선(龜船)의 제도는 어떠한가?”

하니, 남이공(南以恭)이 아뢰기를,

“사면을 판옥(板屋)으로 꾸미고 형상은 거북 등 같으며 쇠못을 옆과 양머리에 꽂았는데, 왜선과 만나면 부딪치는 것은 다 부서지니, 수전에 쓰는 것으로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찌하여 많이 만들지 않는가?”

하니, 조인득(趙仁得)이 아뢰기를,

소신이 황해도에 있을 때에 한 척을 만들어 검(劍)을 꽂고 거북 등과 같이 하였는데, 그 제주가 아주 신묘(神妙)하였습니다.”


이날 논의에서 거북선에 대한 증설계획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요약해 보자면, 우선 당시 조선의 전선이 일본의 전함보다 매우 견고하여 충돌할 경우 1;2.5정도의 비율로 일본 전선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궂이 증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거북선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험많은 사공들과 팀웍이 중요한데 전쟁중에 따로 사공을 착출하거나 군사를 내어 훈련하기 힘들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전쟁으로 인해 조선의 재정이 바닥난 상태에서,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귀선을 증가 시킬 수 없었다.

 따라서 정유재란 당시 거북선이 증설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강력했던 1597년 정유재란 당시 격침되었냐는 의문이 남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거북선은 강력한 전선임이 분명하였지만 무적의 전함은 아니었다.
 당시 이순신장군의 백의종군등으로 인해 조선수군의 팀웍은 상당히 와해된 상태였다. 더국의 거북선의 실전운영은 매우 경험있는 노련한 수군과 사공, 그리고 지휘곤이 일체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더구나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원균장군의 무리한 작전으로 인해 조선수군은 괴멸당하였고, 거북선 역시 수백여척의 일본전선에 홀로 포위된체 집중 포화를 받아 침몰하고 만 것이다. 당시 거북선 갑판은 일본 조총을 방어 할 수 있을 정도였지, 화포를 정면으로 수십대씩 맞아도 견딜 정도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더구나 밑면은 나무로 짜여진 판옥선이었음으로,  운영에 익숙하지 못한 지휘관의 통제를 받은 거북선의 침몰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임진왜란 당시에도 24명이란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거북선의 취약점이라기 보다는 거북선이 맡은 임무의 특성 때문이었다. 이순진 장군은 우리판옥선에 탑재된 화포가 일본전선의 화포보다 사거리도 길고, 다수였다는 것을 활용하기 위해 항상 사거리를 유지하며 싸웠다.
 그러나 거북선은 돌격선이다. 수십 수백대의 일본전선 사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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