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유 생명의 어머니이신 태모님의 성탄치성을 하루 앞두고..

세살림 교단은 태모님께서 상제님으로부터 도통맥을계승하시고 교단을 개창하여 세계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시기 위해 상제님의 대도의씨를 뿌리신 22년 간의 과정을 말합니다.

 

정읍 대흥리 첫째 교단 살림(만 7년)

道紀 41(1911).9.29.

道紀 48(1918).9.18

백산면 조종리 둘째 교단 살림(만 10년)

道紀 49(1919).윤7

道紀 59(1929).9.18.

용화동 셋째 교단살림(만 2년)

道紀 61(1931).11.15.

道紀 63(1933).11.5.

용화동을 떠나 오성산으로 오심(2년)

道紀 63(1933).11.6.

道紀 65(1935).11.1.선화(仙化)

 

태모님의 10년 천지공사는 1926년 부터 태모님이 선화하신 을해(乙亥)년인 1935년 까지 10년간입니다. 태모님은 1926(丙寅)년 태모님 첫공사로 칠성용정도수를 보셨고 당시 수석성도가 고민환 성도였습니다. 그리고1928년(戊辰)년 9월 태인 숙구지에 행차하싱 잠든 개를 깨우는 숙구지공사를 행하셨습니다.

 

태모님의 종통대권 전수     만유 생명의 어머니

 

태모(太母) 고수부(高首婦)님은 억조창생의 생명의 어머니이시니라. 수부님께서 후천 음도(陰道) 운을 맞아 만유 생명의 아버지이신 증산 상제님과 합덕(合德)하시어 음양동덕(陰陽同德)으로 정음정양의 새 천지인 후천 오만년 조화 선경을 여시니라.

 

 도통을 이어받아 도운의 첫 씨를 뿌리심

 

무극은 건곤(천지)이요 도(道)의 본원(本源)이라. 태모님께서 당신을 수부(首婦)로 내세우신 상제님으로부터 무극대도의 종통(宗統)을 이어받아 대도통을 하시고 세 살림 도수를 맡아 포정소(布政所) 문을 여심으로써 이 땅에 도운의 첫 씨를 뿌리시니라. 태모님께서는 수부로서 10년 천지공사를 행하시어 온 인류의 원한과 죄업을 대속(代贖)하시고 억조창생을 새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니라. 『도전(道典)』11편 1장

 

‘옥황상제’라 명정을 써 주심

 

무신년 겨울에 대흥리에 계실 때 어느 날 수부님께

 

玉皇上帝
옥황상제

 

라 써서 붉은 주머니에 넣어 주시며 “잘 간직해 두라. 내가 옥황상제니라.” 하시니라.

 

 도운 개척의 세 살림 도수

 

또 수부님께 이르시기를 “내가 없으면 그 크나큰 세 살림을 어떻게 홀로 맡아서 처리하리오.” 하시니 수부님께서는 다만 상제님께서 어느 외처에 출입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아시니라. 『도전(道典)』6편 82장

 

금구로 가면 네 몸이 부서지리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세숫물을 올리고 나가는 경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며 수부님께 일러 말씀하시기를 “저 살기(殺氣)를 보라. 경석은 만고대적(萬古大賊)이라. 자칫하면 내 일이 낭패되리니 극히 조심하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네가 금구(金溝)로 가면 네 몸이 부서질 것이요, 이곳에 있으면 네 몸이 크리니 이곳에 있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앞으로 내가 없으면 크나큰 세 살림을 네가 어찌 홀로 맡아 처리하리오.” 하시니라. 『도전(道典)』11편 8장

 

 기회를 보아 본소를 옮기리라

 

조종리에서 왕심리까지 거리가 먼지라 신미년에 이르러 신도들의 내왕이 점점 줄어들고 도장 형편도 심히 어려워지니라. 한편 지난 경오년부터 용화동에서 태모님을 시봉하기를 원하여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그 뜻을 밝히더니 7월 29일에 동화교(東華敎) 통정(統正) 이상호가 간부 조학구(趙鶴九)와 더불어 찾아오니라. 고찬홍이 그들을 데리고 태모님을 뵈니 상호가 태모님께 여쭈기를 “제가 듣기로는 천사(天師)께서 사모님께 세 살림에 관하여 말씀을 하시고 또 여러 성도들에게 ‘용화동이 나의 기지라.’고 하셨다 하므로 제가 무진년 동지에 여러 교우들과 함께 용화동에서 동화교를 창건하고 그 이듬해 기사년 3월 16일에 대순전경을 편찬하여 진법(眞法)의 기초를 정하고 때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더니 이제 천사의 회갑을 당하매 비로소 사모님께서 세 살림을 차릴 도수가 된 듯하오니 청컨대 사모님께서 용화동으로 본소를 옮기심이 옳을까 하옵니다.” 하고 간절히 청하니라.

 

고민환이 이 말을 듣고 ‘이 일은 세 살림 도수의 도국 변천(道局變遷)이라.’ 생각하여 태모님께 아뢰기를 “용화동 교인들이 저토록 애원하니 해원도 해 주실 겸 용화동으로 잠시 거처를 옮기시어 뒷일을 결정함이 옳은 줄 압니다.” 하고 여러 차례 간곡히 청하니 태모님께서 할 수 없이 허락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먼저 상제님 성탄절에 영정을 모시고 용화동에 가서 회갑치성을 올리고 그 뒤에 기회를 보아 본소를 용화동(龍華洞)으로 옮기리라.” 하시니라. 『도전(道典)』11편 306장

 

오성산 도장에서의 은거 생활

 

업혀서 올라가신 태모님

 

계유년 동짓달 5일에 태모님께서 세 살림의 파란곡절을 뒤로하시고 용화동으로부터 오성산 도장으로 옮겨가시니 병인년 6월에 공사를 행하시며 거미를 비유로 말씀하신 일이 응험되니라. 일찍이 태모님께서 세 살림 도수를 맡아 온갖 고초를 다 겪으시어 건강이 너무도 쇠약해지신지라 오성산 도장으로 올라가실 때 한 성도의 등에 업혀서 올라가시니 아랫마을 사람들이 태모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리는 권능을 가진 분이라는 소문을 들은 바 있어 면전에서는 말을 못 하고 조심하며 수군거리기를 ‘걸어서 올라가면 서로가 편할 텐데, 다른 사람 힘들게 업혀 간다.’고 하니라. 이 날 용화동에서 태모님을 모시고 와서 다음날 동지치성에 참석한 사람은 김수응과 조학구 등이더라. 『도전(道典)』11편 367장

 

천상으로 떠나신 태모님

 

이어 태모님께서 “목욕물을 데워라.” 하시고 홀로 목욕을 하신 뒤에 “새 옷을 다 내놓으라.” 하시고 일전에 성도들이 해 올린 새 옷으로 갈아입으신 다음 요에 누우시어 고민환을 불러 머리맡에 앉히시니라. 두어 시간 후에 문득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마음만 잘 고치면 선경세계를 보게 되건만…, 선경세계가 바로 눈앞에 있건만….” 하시고 다시 이르시기를 “잘 꾸리고 있으라.” 하시므로 민환이 무슨 뜻인지를 여쭈니 “글쎄 말이네.”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자리 옆에 새 요를 하나 더 깔아라.” 하시고 “증산 상제님이 오시면 나도 올 것이요, 내가 오면 상제님도 오시리라.” 하시더니 잠시 후에 “나의 머리에 손을 대라.” 하시고 상제님 어진을 향하여 손을 흔드시며 “너희 아버지가 벌써 오실 때가 되었는데.” 하고 세 번 거듭 말씀하신 뒤에 눈을 감으시고 선화(仙化)하시니라.

 

 태모님께서는 천지신명과 억조창생의 어머니로서 10년 동안의 천지공사를 통해 창생들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어 후천 오만년 선경세계로 나아갈 길을 열어 주시고 한(恨) 많은 세월을 뒤로하신 채 천상으로 떠나시니 이 날은 환기(桓紀) 9134년, 신시개천(神市開天) 5833년, 단군기원 4268년, 을해(乙亥 : 道紀 65, 1935)년 10월 6일 축(丑)시요, 서력기원 1935년 11월 1일이니, 이 때 성수(聖壽)는 56세이시니라. 이 날 태모님을 곁에서 모신 성도는 고민환, 전선필, 박종오, 이길수 등이니 날이 밝아 수의(壽衣)를 수습하매 태모님께서 이미 횃대에 걸어 놓으셨더라.『도전(道典)』 11편 416장

 

 참고 서적 : 『증산도 팔관법 기본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