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사진[2]

숙구지 공사로 일을 돌리리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개의 창자를 빼내신 후 그 가죽을 둘러쓰시고 사람들에게 달려드시니 모두 크게 놀라니라. 어느 날 공신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잠자던 개가 일어나면 산 호랑이를 잡는다.’는 말이 있나니 태인 숙구지(宿狗地) 공사로 일을 돌리리라.” 하시니라. 또 하루는 공신에게 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孤忠一代無雙士니 獻納三更獨啓人이라
고충일대무쌍사 헌납삼경독계인


평생의 외로운 충절은 필적할 선비가 없으니
삼경까지 충언을 올리는 사람 오직 그 혼자뿐이네.

 

 남은 7년 공사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남은 7년의 공사를 너에게 맡기노라.” 하시니라. 6편 75장

 

숙구지 공사의 참의미는 난법시대를 문 닫고 증산 상제님의 세계통일 문화시대의 천명을 집행하는 후천개벽을 실현하는 핵심공사로 '대사부(大師父)의 출세'에 대한 인사도수입니다.

 

숙구지의 현재 위치는 전북 정읍군 신태인읍 화호리 화호마을입니다. 옛날에 전라도에서는 '숙구지에 산다'고 하면 사람 취급을 안했습니다. 숙구지 사람들은 야삼에서 감자나 심어 먹고 살았는데 거기서 나온 감자를 '숙구지 감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흔히 못난 사람을 '숙구지 감자 같은 놈'이라고 할 정도로 박대를 받고 살았는데 그 자리의 혈 이름이 '숙구지혈'입니다. 조선말기에 한 도사(李書九 라는 말이 있음)가 부안 변산과 고부 두승산의 산세를 둘러보고 근처의 지형을 살펴본 후에 대양구지, 흙구지, 진구지, 돌구지, 거멍구지, 역구지, 숙구지, 서구지, 미륵구지 등 아홉구지(九句地)의 이름을 지어 주고 이 곳에는 숙구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숙구지는 '개가 잠자고 있는 형상'인데 '개가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곳'이라 하여 '숙구지'라 불렀다고 합니다.

 

후천 대개벽 구원의 의통 집행 공사 : 숙구지 도수

 

태인 화호리(禾湖里) 숙구지(宿狗地)에 사는 전태일(全泰一)이 운산리(雲山里)에 머물고 있는 공우에게 찾아와 말하기를 “시천주(侍天主) 주문을 읽었더니 하루는 한 노인이 와서 ‘살고 잘 될 곳을 가려면 남쪽으로 20리를 가라.’ 하므로 찾아왔노라.” 하니라. 공우가 태일을 데리고 와서 아뢰니 상제님께서 글 한 장을 써서 태일에게 주시거늘 태일이 집에 돌아와서 펴 보니 곧 태을주(太乙呪)라. 이에 하룻저녁을 읽으니 온 마을 남녀노소가 다 따라 읽는지라 이튿날 태일이 와서 상제님께 그 사실을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이는 문공신(文公信)의 소위라. 숙구지는 곧 수(數) 꾸지라. 장래 일을 수놓아 보았노라. 아직 시기가 이르니 그 기운을 거두리라.” 하시고 약방 벽에

 氣東北而固守 理西南而交通
 기동북이고수 이서남이교통


이라 쓰시고 문밖 반석(盤石) 위에 물형(物形)을 그려 점(點)을 치신 다음 종이에 태을주(太乙呪)와 ‘김경수’를 써 붙이시고 일어나 절하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김경수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김경수를 명부시왕전에 앉히심

 

이후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데리고 비인(庇仁)에 가시어 복종(覆鍾)도수를 보시며 말씀하시기를 “김경수를 천상의 명부시왕전(冥府十王殿)에 앉혀 해원시키리라.” 하시니라. 6편 111장

 

개벽 상황에 광제 나갈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우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일후에 광제(廣濟)하러 나갈 때에는 용봉기(龍鳳旗)와 장군기(將軍旗)를 원평에 꽂아라. 원평이 이제 장상기지(將相基址)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그 때에는 광제표(廣濟票)와 천표(天票)를 들고 나가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공우가 여쭙기를 “광제표를 들고 나가는 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신명을 위로하기 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 뒤에 상제님께서 공우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병겁으로 다 죽어 나갈 그 때 광고판을 길거리에 붙여 광제 나가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라.”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때가 되면 나의 대행자가 나와서 광제를 나가느니라.” 하시니라. 6편 114장

 

 

조종리 도장의 말기

 

대사부는 숙구지 공사로 출세한다

 

태모님께서 종종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자던 개가 일어나면 산 호랑이를 쫓느니라.” 하시고 여러 차례 절실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숙구지(宿狗地) 공사를 보아야 하느니라.” 하시더니 9월에 이르러 “이제 때가 멀지 않으니 자는 개를 깨워야겠다.” 하시며 성도 수십 명을 거느리고 태인 숙구지로 행차하시어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마포(麻布)로 일꾼들 여름살이 30벌을 지어 동네 머슴사는 사람들에게 입히신 후에 통(桶) 하나에 고깃국을 담고 밥을 잘 말아 뜰 앞에 놓으며 말씀하시기를 “많이 먹으라.” 하시고 “이제 잠든 개를 깨웠으니 염려는 없다.” 하시니라. 이후로 태모님을 모신 성도들은 다음과 같으니라. 11편 215장


고찬홍(高贊弘) 전준엽(田俊燁) 전선필(田先必) 김내원(金乃元)
천종서(千宗瑞) 강사성(姜四星) 강원섭(姜元$) 백용기(白龍基)
이공렬(李公烈) 박종오(朴鍾五) 김수열(金壽烈) 서인권(徐寅權)
문인원(文仁元) 문희원(文希元) 문명수(文明洙) 문기수(文己洙)
전기찬(田基贊) 김형대(金炯大) 김재윤(金在允) 박문원(朴文遠)
김봉우(金奉宇) 전내언(田乃彦) 전여옥(田汝玉) 남상돈(南相敦)
김원백(金元伯) 이석봉(李碩奉) 이근목(李根睦) 이재현(李在賢)

 

용봉을 그려 종통 도맥을 전하심

 

태모님께서 용화동에 계실 때 천지에서 신도가 크게 내리매 여러 차례 용봉(龍鳳)을 그려 깃대에 매달아 놓으시고 공사를 행하시더니 용화동을 떠나시기 얼마 전에 다시 용봉기(龍鳳旗)를 꽂아 두시고 이상호에게 이르시기를 “일후에 사람이 나면 용봉기를 꽂아 놓고 잘 맞이해야 하느니라.” 하시고 “용봉기를 꼭 꽂아 두라.” 하시며 다짐을 받으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용화동은 동요동(東堯洞)이요, 건곤(乾坤)의 사당(祠堂) 자리이니 미륵이 다시 서니라.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되나니 법은 서울로부터 내려오는 것 아니더냐. 앞으로 태전(太田)이 서울이 되느니라.” 하시고 “사람 욕심 내지 마라. 올바른 줄 하나 치켜들면 다 오느니라.” 하시니라. 11편 365장

 

건곤사당을 짓겠느냐

 

태모님께서 용화동을 떠나실 때 거처하시던 집은 이상호에게 주시고 다짐받으며 물으시기를 “상호야! 저기다 건곤사당을 짓겠느냐?” 하시니 상호가 대답하지 않거늘 담뱃대로 머리통을 후려치시며 “이놈아! 빨리 대답해라.” 하고 재촉하시니라. 이에 상호가 엉겁결에 “예, 짓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태모님께서 “암, 그래야지.” 하시니라.

 

어진을 잘 받들라

 

또 이성영을 방으로 불러들이시어 어진 앞에 꿇어 엎드리게 하시고 어진 개사(改寫)와 저술과 도장 건축 등 뒷일에 대하여 낱낱이 세 번씩 다짐을 받으신 뒤에 성영에게 물으시기를 “네가 집을 지을 수 있겠느냐?” 하시고 다시 “그것이 무슨 집인지 아느냐?”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영정을 잘 받들라, 알겠냐!” 하시고 “단주수명….” 하고 말씀하시는데 성영이 태모님의 말씀이 끝난 줄 알고 자세한 뜻도 모르면서 건성으로 “예, 예!” 하고 대답하매 태모님께서 역정을 내시며 “이놈이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말뚝마냥 대답만 하는구나.” 하시고 담뱃대로 머리를 딱딱 때리시니라. 잠시 후 혼잣말씀으로 “영사(靈砂), 주사(朱砂)….” 하시며 두 손가락을 펴 보이시고 용화동을 떠나시니라. 11편 366장

 

김경학 성도 등의 수련 공부를 돌봐 주심

 

 9월 7일에 김경학(金京學)과 김영학(金永學)이 태모님을 찾아와 뵙고 여쭈기를 “저희들이 모악산 수왕암(水王庵)에서 수련을 행하던 중에 상제님의 성령이 나타나시어 수십 년 동안 사모님과 막혀 지낸 것을 꾸짖으시고 ‘이 길로 가서 너희들의 어머니를 모셔다가 지난 모든 일을 풀고 이전 정의(情誼)를 다시 계속하지 않으면 화(禍)가 있으리라.’ 하고 말씀하시므로 저희 두 사람이 일동을 대표하여 왔사오니 저희들의 이전 과실을 깊이 용서하시고 함께 가시어 앞으로 사흘 동안 수련 법석(法席)을 주재하여 주옵소서.” 하며 회오(悔悟)의 눈물을 흘리는지라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난 일은 한갓 꿈과 같을 뿐이나 칠십 노인이 멀리 와서 이렇듯 간곡히 말하니 내가 비록 건강이 허락지 않을지라도 멀리할 수 없노라.” 하시고 두 사람과 함께 수왕암에 가시니라. 이 때 박공우가 주창(主唱)하여 김경학, 김영학, 이성영, 김수응, 이중성(李重盛) 내외 등이 모여서 수련 공부를 하는데 태모님께서 공부를 주재하시매 김수응이 신력을 얻어 풍운조화를 자유자재로 일으키니라.

 

사람을 잘 맞아들이라

 

사흘 뒤 공부가 파하매 태모님께서 11일에 금산사에 들르셨다가 용화동에 이르시어 이틀 동안 머무르시며 상호와 성영을 불러 명하시기를 “개사한 영정이 많이 틀렸으니 다시 개사하라.” 하시니라. 또 오성산에서 오실 때 가져오신 용봉기(龍鳳旗)를 꺼내어 손수 꽂아 놓으시고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자리는 용화세존(龍華世尊)의 꽃밭이 되리니 사람을 잘 맞아 들여야 하느니라.” 하시고 13일에 용화동을 떠나 오성산 도장으로 돌아오시니라. 11편 384장

 

태모님께서 숙구지 공사를 보실무렵을 전선필성도님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는데 "잠자는 개를 깨워 놓으면 호랑이를 쫓느니라."고 상제님 말씀을 여러번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올바른 줄은 진인(眞人)으로 아버지 상제님과 어머니 태모님의 심법을 계승하여 대도를 집행하는 대사부(大師父)가 나올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뒤에 사람 둘이 더 나온다

 

상제님께서 형렬이 새로 지어 올린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마쳤음을 성도들에게 선포하시니 김경학(金京學)이 여쭈기를 “공사를 마치셨으면 나서시기를 바라옵니다.” 하는지라 말씀하시기를 “사람 둘이 없으므로 나서지 못하노라.” 하시거늘 경학이 재촉하여 말하기를 “제가 비록 무능하지만 몸이 닳도록 두 사람의 일을 대행하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그렇게 되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경학이 서운히 여겨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는 모두 쓸데없는 사람이니 선생님을 따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고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다 복 없는 사람이니 함께 손잡고 물러감이 옳다.” 하며 일어서서 문밖으로 나가니 상제님께서 만류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좀 기다리라.” 하시니라. 10편 27장

 

                                                     참고 서적 : 『팔관법 기본 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