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문명의 황금시절!

인류 원형문화인 '신교 삼신문화'시대의

종교,정치,우주관,인간론,통치원리,언어,음악,건축,동북하 한중일 삼국의 고대문화 전수 비밀을

총체적으로 밝혀주는 유일한 역사 경전



환단고기』는 독립운동가인 운초 계연수가 안함로와 원동준의 「삼성기」, 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 「북부여기」, 이맥의 「태백일사」 등을 한 권으로 엮어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동방 한민족의 시원 종교이자 동서양 인류의 근원종교인 '신교神敎'의 실상과 세계관을 밝히는 한민족 고유 사서의 결정판이다. 이 책에는 원문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현토(懸吐)를 붙였다. 따라서 한문을 국한문 혼용체로 읽어 우리글처럼 친근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

목차


삼성기전 상편 / 삼성기전 하편 / 단군세기 /
북부여기 상하 /가섭원부여기 / 태백일사

일러두기

중국과 일본에 의해 수십만 권의 왜곡되고 사라졌으나, 한민족의 뿌리역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문헌이 현존하고 있다. 북애노인의 『규원사화』와 계연수의 『환단고기』외에 일연의 『삼국유사』등이 그것이다. 삼국유사는 이미 불교의 안목으로 윤색되어 시원역사의 전모를 볼 수는 없으나, 우리 역사의 진실을 볼 수 있는 내용이 남아 있기에 역시 소중한 자료이다.

『환단고기』는 독립운동가 계연수(1864~1920)가 안함로(579~640)와 원동중(고려말로 추정)의 『삼성기』, 행촌 이암(1297~1364)의 『단군세기』, 범장(?~1395)의 『북부여기』, 이맥(연산군~중종)의 『태백일사』들을 한 권으로 엮어 1911년에 간행한 책이다. 여기에는 잃어버린 한민족의 7천년 상고 역사와 문화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환단고기』를 엮은 운초 계연수는 평안도 선천宣川에서 태어났으며 해학 이기의 문인門人으로 독립운동단체인 천마산대天摩山隊,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의민사義民社, 벽파대碧波隊,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 등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해학 이기가 창설한 단학회에 참여하여 민족사 정립에도 힘썼다. 그러다 1920년 일본 밀정의 밀고로 헌병대에 체포되어 처형된 후 압록강에 그 시체가 토막 나 버려지는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환단고기』가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79년 계연수의 제자인 한암당 이유립(1907-1986)에 의해서이다. 이유립은 어린 나이로 독립군 천마산대 통신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2세때 단학회가 주관하는 교육기관인 배달의숙에서 계연수,이덕수 등으로부터 역사를 배웠다. 광복후(1946년) 환단고기를 가지고 월남하여 대전에서 자리잡았다. 그리고 단학회를 단단학회로 바꾸고(1963년) 한민족사 연구와 강의에 전념하면서 후학을 길렀다.

그러나 민족주체사관을 확립하는데 한평생을 바친 그의 생에는 한암당
寒闇堂
이라는 호처럼 춥고 어두운 셋방에서 굵기를 밥 먹듯 하는 등, 혹독한 시련 자체였다. 이처럼 『환단고기』는 우국지사들의 피와 눈물, 고난으로 지켜온 한민족의 소중한 역사서이다.

.... 이후 생략......


저자와 각 편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책들을 참고하세요


이유립 평전 백년의 여정



이유립 선생은 우리나라 상고사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때, 한반도 상고사를 연구한 『환단고기』를 공개하여 당시 역사학계를 크게 놀라게 한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역사학, 특히 국사학은 일제식민사학에 의해 훼손된 채 내려왔고 이것을 바로 잡는 것이 학계의 100년 과업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여독이 풀리지 않고 일본역사교과서 문제, 중국의 소위 동북공정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는 이 시점에서 한국 상고사 연구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이유립 선생늬 『환단고기』는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환단고기』를 비롯한 이유립선생의 생애와 연구 내용을 중심으로 그의 삶을 조명해보고 그 역사적 가치와 시사점을 정리하고 있다.


삼성기






단군세기



행촌杏村 이암 찬撰 │ 안경전安耕田 역주譯註

-고조선이 한민족사에서 차지하는 의미

고조선은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신시 배달국의 국통을 이어받은 나라이다. 요순 시대에 해당하는 기원전 2333년부터 전국시대 말기인 기원전 238년까지 무려 2096년의 역사를 내려오면서, 마흔 일곱 분의 단군이 다스려왔다. 고조선의 지배하에 있던 제후국들은 70여 개 국에 달하였다. 오늘날의 한반도와 만주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본토 깊숙한 곳까지 통치권이 미쳤던 동방의 대제국이었다.

또한 고조선은 우주의 주재자인 삼신상제님을 신앙하고 신교神敎를 발전시켜 왔다. 삼신상제님에 대한 제천의식은 말할 것도 없고 신교에 토대를 둔 우주관과 인간관 및 역사관을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고조선은 요임금의 당나라, 순임금의 우나라, 그 후의 하은주 3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상제문화와 신교의 생활문화를 전수해 준 동방의 문명국이었다. 상제님께 올리는 천제문화, 치수治水법, 책력, 금속무기, 문자제도, 천자제도 등을 전해주었다. 중국의 황하문명은 고조선으로부터 문명전수가 없었더라면 탄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방 문명의 중심국가인 고조선이 기원전 5세기에 들어서면서 쇠락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마지막 임금인 47세 고열가 단군때 해모수라는 인물이 출현하여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북부여를 창건했다. 이후 고조선 영역 내에서 북부여, 마한, 진한, 변한 등 고조선의 여러 계승국가들이 등장했고 그 가운데서 또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도 나오게 되었다.
고대 일본의 첫 국가로 일컬어지는 야마토 정권도 부여에서 나왔다.

요컨대 조선은 고대 한민족의 열국들과 일본 등을 낳은 모태였을 뿐 아니라 중원 땅에 신교문화를 전파한 동방의 뿌리국가였다.

- 역자譯者 서문 중 일부를
발췌

북부여기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 찬撰 │ 안경전安耕田 역주譯註

-『북부여기』의 의의

『북부여기』는 고조선이 망한 후 열국시대로 옮겨가면서 복잡하게 전개된 우리 역사의 국통맥을 분명하게 전해주고 있다. 기존 역사학계에서는 고조선과 부여를 계승관계가 아닌 별도의 연원을 가진 국가로 생각하였으며 삼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하였다. 이런 면에서 휴애거사 범장이 쓴 『북부여기』는 모호함 속에 감추어져 있던 북부여와 고구려, 동부여, 삼한의 연원을 드러내어 우리 동방역사의 뿌리를 밝혀주는 대단히 귀중한 기록이다.

한민족 9천년 역사에서 가장 복잡한 국통 내용이 바로 부여사의 맥이다. 고조선으로부터 고구려의 성립 이전인 열국분열시대, 즉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시대의 약 200년 기간이 우리 한국역사에서 공백의 상태로 남아있다. 가장 알기 어렵고 복잡한 전환기적 시간대가 바로 이 시기이다.

삼국시대로 넘어가는 역사의 고리인 북부여, 열국분열 시대의 역사가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이 왜곡 말살되고, 드러나지 않은 역사의 고리를 『북부여기』에서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동방 한민족의 상고 시원역사 시대와 삼국시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 이 '부여사의 기원과 맥'을 밝혀주는 범장의『북부여기』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한민족 국통의 체계'를 바로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역자譯者 서문 중 일부를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