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의 역사성에 관하여 그 실체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다음의 몇 가지를 통해 그 진실성을 말해 보고자 합니다.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이 풍부히 남아 있는 곳은 환단고기입니다. 여기서는 환단고기의 기록과 고고학적 물증을 기준으로 말하고자 합니다. 환단고기의 기록이 물증으로 증명되고 있는데도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을 부정하는 제도사학계는 과연 어느 나라 국민인지 스스로 되물어야 할 것입니다.


 

(1)북경의 삼조당: BC 2707년에 있었던 배달국과 치우천자와 서토의 황제(?) 제후인 헌원과의 전쟁은 동아시아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전쟁입니다. 최근 서토는 이 전쟁의 주요 당사자인 치우천자와 황제의 묘를 정비하고 그들을 서토의 정식조상으로 받아들여 북경의 탁록에다 삼조당을 세웠습니다. 환단고기는 동아시아를 뒤흔든 역사적 전쟁인 치우천자와 황제와의 전쟁기록을 가장 많은 분량으로 가장 완벽히 기록하고 있는 사서입니다.

 

(2)강화도 참성단: 강화도 마니산에 제천단과 참성단이 있어 역사적으로 해마다 천제를 지내온 바 그 첫 기록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왕검단군 무오 51년(BC 2284년)에 쌓았다고 나옵니다. 마니산 참성단은 지금도 의연히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을 뒷받침하며 그 의연히 그 자태를 빛내고 있습니다. 서울 올림픽과 전국체전 성화채취의 기본성지가 되고 있습니다. 차제에 마니산 참성단은 국보로 지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3)평안도의 단군릉: 단군조선의 실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안도 강동현에 있는 대박산에서 단군릉이 1993년 발굴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왕과 왕후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되었으며, 북한은 이 단군릉을 거대하게 재축조하여 성역화 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BC 2084년 단군조선 제5세 구을 단군이 붕어하시고 대박산에 묻혔다는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유물유적인 것입니다. 환단고기의 역사성이 여기서도 증명되는 것입니다.

 

(4)흘달단군 때의 오성취루: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대야발 선생의 단기고사에 는 단군조선 제13세 흘달 단군 50년(BC 1733년)에 5개의 별이 일렬로 서는 장관을 연출했는데, 이것이 서울대학교 박창범 교수에 의해 천문과학적 방법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세계적인 천문학자인 박창범 교수는 1734년 7월 13일 일몰 직후 금성, 목성, 토성, 수성, 화성 등 추가로 초승달까지 1렬로 지어 하늘에 나타나는 장관을 연출했음을 확인하였습니다(우연일 확률은 0.007%데 불과)

 

(5)갑골문의 귀방: 은나라의 갑골문에서도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유물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BC 1291년 단군조선 제21세 소태 단군 재위 때 은나라 왕 무정이 `귀방`을 쳤다는 기록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남아 있는데, 과연 은나라의 갑골문에서 은나라의 귀방정복 사실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이토록 확실한 역사적 근거와 고고학적 근거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6)아유타국과 백제상인: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는 `진역유기`를 인용하여 현재 태국에 있는 아유타국과 백제상인들이 교역한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백제가 현재의 캄보디아인 부남국과 교역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정확히 뒷받침해 줍니다. 이는 백제의 대륙존재설이나 해외경영의 한 단면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인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기록이 남아 있는 환단고기를 연구도 해보지 않고 위서 운운하는 것이 한국역사학계의 현실입니다.

 

(7)장수왕의 연호 건흥: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본기에는 고구려의 장수왕이 즉위하자, 건흥이러는 연호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건흥 연호는 1915년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서 출토된 불상의 명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상에는 `건흥오년세재병진`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 그 정확한 근거가 나와 있습니다. 실로 대단한 기록이요 엄청난 고고학적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강단사학에서 무시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8)연개소문의 내력: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발해의 정사인 `조대기`를 인용하여 연개소문의 아버지 이름을 연태조, 할아버지는 자유, 증조부는 광이라고 했다. 그런데 1923년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된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의 무덤에서 연남생의 증조부 이름을 `자유`로 명기하고 있어서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진가를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고구려 및 발해사와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을 알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서인 것입니다.

 

(9)이정기 장군과 제나라: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는 781년 고구려의 유장 이정기 장군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고구려의 유장 이정기는 중국대륙 산동반도 일대의 15개 주에 제나라를 건국하고 4대 58년간 다스렸던 사람인데 환단고기는 여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고구려의 유장 이정기가 중국의 산동반도에 제나라를 건국하고 다스렸음은 KBS에서도 방영되어 그 역사적 사실이 인정되었습니다. 이처럼 환단고기는 위대한 사서인 것입니다.

(10)발해 문황의 연호 대흥: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는 발해의 제3세 문황 대흠무의 연호가 대흥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1949년 만주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출토된 정효공주묘지 비문에서 발해의 문황 대흠무가 자기 연호를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이란 쓰고 있었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가 얼마나 정확한 역사기록을 남긴 사서인지가 확실히 증명된 것입니다.

 

(11)비파형청동검: 단군조선의 비파형청동검은 단군조선이 서토와 구별되는 선진 청동문화를 가진 정치세력 집단이었음을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군조선의 유적유물입니다. 이 정치집단의 분포도는 환단고기가 말하고 있는 역사적 시기와 역사적 강역이 너무도 일치하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비파형청동검의 분포지는 만주, 한반도, 중국대륙의 동편으로 환단고기가 설명하고 있는 역사강역과 완전히 일치하며 그 연대도 완전히 일치합니다.

 

(12)고인돌유적: 환단고기의 태백일사가 설명하고 있는 고인돌에 대한 기록 또한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을 유적유물로 뒷받침하는 단군조선의 실존적 증거물입니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서는 배달국 신시시대의 장묘문화로부터 고인돌시대 장묘문화와 삼국시대의 장묘문화까지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이와 같이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의 실상을 연대기와 역사기록과 역사강역을 정확히 표시하고 있는 아시아의 대표적 역사서이며 세계적인 역사서인 것입니다.

 

(13)하북성 중산의 천자명문: 하북성 중산묘에서 BC 10세기 것으로 보이는 청동도끼가 발견되었는데, 그기에는 `천자건방중산후`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군조선의 핵심강역인 서요하 지역에서 출토된 BC 22세기의 도자기 부호와 양식이 완전히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BC 22세기부터 BC 10세기까지 북경과 하북성 일대를 다스린 것은 단군조선의 천자였음을 기록한 환단고기의 기록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서토인들이 최초로 천자(황제)를 참칭한 것은 BC 221년의 진시황이었습니다.

 

(14)요녕성의 `번한` 명문: 요녕성 대집둔 지구에서는 환단고기가 기록하고 있는 단군조선의 제후국 번한(번조선)의 명문이 나타나 환단고기의 사실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요녕성 대집둔 지구에서는 番汗(번한/번조선)을 나타내는 `番干`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은으로 만든 도장이 발견된 것입니다. 단군조선은 개국과 동시에 진한(요하지역)과 번한(황하/하북성)과 마한(한반도/만주) 등의 삼한(삼조선)으로 나누어 다스렸다는 환단고기의 기록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유물유적이 출토된 것입니다.

 

(15)단, 기, 언, 고죽 명문: 서요하 지역의 적봉시 하가점을 중심으로 하북성에서 요서지역싸지 출토되는 청동기 문화 유적지를 `하가점하층문화`라 부르는데, 여기서는 단군조선을 나타내는 단(亶), 단군조선의 제후국 기자조선(번한/번조선)을 나타내는 기(기), 단군조선의 제후국 서국의 서언왕을 나타내는 언(언), 단군조선의 제후국 고죽국을 나타내는 고죽(孤竹) 등이 광범위하게 출토되고 있습니다. 모두 환단고기의 기록을 참고하지 않으면 알아 들을 수 없는 명문들이니다.

 

(16)남녀조각상과 곰석상: 서요하지역의 적봉시 홍산과 나사대 지역에서는 환웅과 곰녀를 상징하는 남녀조각상과 곰석상이 출토되었습니다. 서요하 지역의 적봉시 홍산유적지에서는 갑골문의 초기형태가 발견되어 은나라의 갑골문이 홍산문화 담당자들에 의해 전해졌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홍산문화와 나사대 문화는 대체적으로 배달국 시대(BC 3898년과 BC 2333년 사이)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17)배달국의 녹도문과 창성조적비: 환단고기에는 BC 3898년 18분의 환웅 중 배달국을 건국한 제1세 거발환 환웅께서 신지에게 녹도문을 창안할 것을 명하고, 배달국의 역사기록을 담담시킵니다. 그런데 이 녹도문이 한국의 평양에서도 발견되었고, 산동성의 창성조적비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평양의 녹도문과 창성조적비의 글씨는 모양과 형태가 배달국의 녹도문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이 이렇게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18)가림토문과 일본의 신대문자: 환단고기에는 BC 2181년 제3세 가륵 단군이 을보록에게 정음38자를 창제할 것을 명합니다. 그런데 이 가림토문의 흔적은 지금의 한글에 그래로 남아 있고, 일본의 신대문자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 `구주신사`의 가람토문비석이나 `이세신궁`의 가림토문청동거울은 한글비석과 한글청동거울이라 명명하면 딱 들어 맞을 정도로 완벽한 가림토문입니다. 또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역시 그 형태와 내용이 한글(가림토문)과 흡사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19) 요하는 압록이고 난하는 요하: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는 지금의 압록강은 `동압록`이고,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고, 지금의 난하가 `요수(요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란 사실은 중국요사지리지와 삼국유사도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고 지금의 난하가 요수임은 서토의 고지도 `지리도` `연산도` `중국삼대간룡총람지도`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환단고기가 얼마나 정확한 기록을 반영한 역사서인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20)낙랑군과 낙랑국: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북부여기는 낙랑군과 낙랑국에 대한 근거를 가장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낙랑이란 지명이 나타나는 것은 BC 1767년 제13세 흘달 단군, BC 1237년 제23세 아홀 단군, BC 195년 북부여 제1세 해모수 단군, BC169년 북부여 제3세 고해사 단군 때입니다. 특히 BC 195년에는 낙랑왕 최숭이 보물을 싣고 마한의 서울 왕검성으로 가는 장면이 적혀 있습니다. 이때부터 하북성의 낙랑군과 한반도의 낙랑국이 구분되어 나타납니다. 환단고기는 고대사의 비밀을 푸는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은 이렇게 명확히 나타났습니다. 환단고기를 통해본 아시아 정확히 말해 극동삼국 `한국` `지나` `일본`의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이미 범죄 수준의 무협소설입니다. 아시아 대륙과 중국대륙 그리고 만주와 한반도에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72세 6962년의 역사를 모조리 무덤의 역사로 파묻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불행한 역사를 이제는 제대로 밝혀야 합니다. 부끄러운 동양의 얼굴을 다시금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민족사적 요청이며 동양사적 요청이며 세계사적 요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