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국(桓國)의 고고학(考古學)

환국의 시작 그러니까 약 1만년경의 후기 구석기 문화 및 신석기 초기 문화를 토대로 하여 건국된 환국에 대한 고고학적 고찰을 해 보겠다.

1) 환국시대의 기후

동북아시아에서 인류 최고 역사의 시작은 대략 3만년전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물론 지형이나 기후, 자연조건등이 오늘날과는 크게 달랐다.

홍적세(洪積世-Holocene期)이전의 충적세(沖積世-Pleistocene期)말기에 해당하는 2만년전의 지형을 보면, 한반도 서해안은 중국동해안과 저지대로 연결되어 황해가 초원과 밀림으로 덮여 있었고 일본열도는 사할린과 함께 시베리아 대륙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도 한반도와 일본사이에는 해협이 존재하고 있었고 한반도 동쪽에 동해가 여전히 위치하고 있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이 시기에 발해는 하북성 일대 평야를 포함하여 빙하호수로 변해 있었다는 점이다.

남부시베리아와 바이칼(Baikal)湖 동부(Trans-Baikal), 흑룡강중상류 등의 지역은 대부분 침엽수 위주의 밀림지대(森林地帶)였고 만주와 몽고지역은 초원과 사막으로 덮여 있었다. 당시의 한반도와 일본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뒤섞인 혼합밀림지대였다. 시베리아와 몽고북부에는 이미 구석기인들이 어로와 수렵생활도 시작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일만여년전 홍적세로 접어들게 되는데, 4번째 빙하기가 지나고 기온이 상승하여 신석기시대로 진입하면서 인류의 활동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본격적인 인류의 역사가 전개된다. 홍적세이후부터 대체로 현재와 유사한 지형이 이루어지나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이 반복되다 환기(桓紀) 6천년경(B.C 1300년경)에 와서야 오늘날과 유사한 지형이 형성되게 되었다. 이는 지구 전체적 온도 변화인데 환기 천년 ∼ 4천년경에는 현재보다 평균 3 ∼ 5℃ 정도 더 높은 온도와 더 높은 습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환기 6천년(B.C1300 ∼ B.C1000) 이후부터 점차 추워지고 건조한 기후로 변하면서 현재와 유사해지고 있다.

2) 환국시대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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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타유적Mal'ta>

동부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북쪽 벨라야강 유역의 구석기시대 후기 유적으로 약 1만여년쯤으로 추정되어진다. 매머드·순록 등을 대상으로 생활한 수렵인의 유적으로, 부정형(不整形)의 움집터가 불규칙적으로 흩어져 있다. 석기는 돌칼·송곳·그레이버[彫器]·스크레이퍼[搔器] 등이 있고 골각기의 장신구도 출토되고 있다. 특히 다수 발견된 상아를 재료로 한 소형의 비사실적인 여인상은 시베리아 최고(最古)의 유적인 데다 서방의 솔뤼트레 문화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한 최초의 인류집단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바이칼유적>

시베리아의 신석기시대는 환기 천년전(BC6,000)부터 시작되는데, 신석기시대의 특징인 토기의 발생과 원시농경이 이루어졌고 가축이 본격적으로 행하여졌다.

토기는 처음 평저(밑바닥이 평평한)토기였으나 모닥불에 얹어 사용하기 편하도록 밑이 뾰족한 형태로 변하게 된다. 특히 바이칼지역에는 둥근밑토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고 다른지역보다 더 동물뼈를 활용한 골기의 사용이 많았다. 주로 수렵에 활용되는 화살촉이나 작살로 많이 활용된 것이다. 특히 중요한 특징은 연옥(軟玉)이 널리 이용되었는데 연옥의 산지가 바이칼유역에 있기 때문이고 이 연옥으로 지역종족들의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연옥제품들은 교역으로 멀리까지 보급되게 되었다.

바이칼유역 즉 시베리아-예니세이강 중류, 앙가르강-레나강 상류 지역은 동부유럽평원과 우랄지역과 함께 시베리아 3대 예술의 중심지로서 암각화가 많다. 동심원과 사냥표현의 암각화는 우리나라 최동남단 울주군 암각화와 유사하다. 가축으로는 이미 개를 활용한 사냥을 시작하였고 환기 2,000년(BC5,000)대부터 중앙아시아 알타이동광에서 나온 구리(순동)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있다.

이들은 신석기시대를 축으로 일부는 아무르강을 타고 북만주지역으로 들어오고 일부는 몽고초원을 타고 발해만지역과 중국서북부지역으로 남하하게 된다. 알타이 유역은 몽골리안이 아닌 백인종으로 체워지게 된다.

이동의 이유로는 사냥을 중심으로 한 수렵위주의 경제형태에서 기후의 변화와 함께 사냥대상이 줄어드는데 따른 어로중심과 원시농경을 시작하면서 적합한 기후와 강 및 토양을 찾아 남하하게 되는게 이유이다.

사해(査海)유적>

요녕지역 최고(最古)의 유적인 사해유적환기 1,000년(BC6,000)경으로 추정되어지는데 부신시(阜新市)에서 발굴되어졌다. 사해(査海) 문화는 심양의 신락문화보다 이르고 또한 적봉의 홍산문화보다 1000년 정도 이르므로 선홍산문화(先紅山文化)라고도 한다.

대릉하의 동쪽 상류 지역인 사해문화지에서 출토된 찬란한 옥부(玉斧)와 옥비(玉匕), 옥결 등, 옥기제품 20여점도 중국 최초의 옥기(玉器)이고 사해인들은 반지하식 수혈 움막에 살았고 죽어서는 수혈식 토갱에 묻혔다. 사해문화인의 토템 중에서 옥룡은 농사짓는데 필요한 비를 내려주고, 또한 두꺼비는 풍년을 의미하며 동시에 곳간의 수호신으로 숭상되었다.

옥도끼는 석병시대에 신권(神權)을 상징하는 새로운 옥병 시대를 열었다. 더욱이 옥도끼는 빛을 발함으로써 당시의 어떤 무기보다 무서운 역병을 일으키는 귀신들을 내쫓는 효험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남자들은 사냥을 업으로 하고 때로는 가축을 길들이기 시작했고 주로 개와 약간의 돼지를 길렀다. 사냥은 돌화살로 하였다.

신락유적(新樂遺跡)>

신락유적(新樂遺跡)은 동북평원남부 혼하북안(渾河北岸)에 동서간의 대상대지(帶狀大地)에서 발견되었는데, 지형이 비교적 높은 해발 49.6m에 위치하고 있다. 심양시(瀋陽市)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량의 세석기(細石器), 토기(土器), 옥기(玉器), 골기(骨器), 공공예품(木工藝品), 탄화곡물(炭化穀物(麥))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은 3개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층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放射性炭素年代測定)에 의해 밝혀지길 대략 환기 2000년(BC5000)무렵의 유적이라고 한다.

하층에서는 석마반(石磨盤), 석마봉(石磨棒)의 사용이 확인되어 탄화(炭化)된 맥(麥-Panicum)과 함께 크고 작은 집터 10여 곳이 발굴되어, 원시농경(原始農耕)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한다. 이 시기의 경제활동으로 어로와 채집이 원시농경과 함께 이루어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비옥한 토지와 적당한 기후로 인해 이미 농경에 진입하고 어로를 중요시하는 원시모계씨족사회(原始母系氏族社會)가 성행했던 비교적 정주생활로 접어든 시기에 있었다고 한다.

또한 원시농업의 진행과정에서 사냥.어로.채집 등의 활동이 다양한 식물분포와 다종의 동물군에 의한 자연자원이 풍부한 환경으로 인해 일부지역에서 '가축화의 시도'라는 실험적 활동을 하는 부류가 등장했다.

소주산(小朱山)유적>

요남지역(遼南地域) 신석기시대에서 가장 이른 문화는 환기 2,000년(BC5,000)경에 형성된 소주산(小朱山;장해현 광록도) 하층유형이다. 이 유형의 유적지는 장하(庄河), 신금현(新金縣) 남쪽에서도 발견된다. 출토된 석기에는 돌갈판, 돌절구, 석부(石釜)등이 있다. 도기(陶器)는 홍갈색 도기가 주류이며, 손으로 빚어 만들었다. 무늬는 대부분이 갈 지(之)자와 옷감무늬(編織紋)인데 심양 신락하층문화의 도기와 비슷하다.

소주산하층문화의 연원 및 신락문화와의 관계는 더욱 연구가 필요하다. 이후의 소주산 중층문화와 상층문화는 배달국에서 다루겠다.

장신남산(長新南山)유적>

송요평원(松遼平原)은 요동 남부지역문화와 관련성이 더욱 많다. 길림성 대안현(大安縣)의 장신남산(長新南山)유적은 연대가 심양의 신락하층문화에 해당되거나 약간 늦지만 부하문화와 앙앙계문화보다는 이른 시기이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도기(陶器)의 갈지(之)자 무늬는 신락하층의 것과 매우 비슷하다.

대륙의 유적(주변문화)>

'東夷族'의 활동지역을 문헌상으로 보면, 하북성 동북부와 산동일대, 양자강하류유역등이다. 산동지역에서 가장 앞서는 신석기문화유적은 北辛文化인데, 북신문화는 7천년전까지 소급되어지고 황하의 자산, 배리강문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또한 B.C.4500년경의 이지역 大汶口文化와도 직접적인 연원관계에 있다.

대문구문화는 하남성서쪽의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로써 東夷系문화로 추정되고 있고 이후의 용산문화(龍山文化)에 연결된다.

3) 환국시대의 문화

세석기(細石器)와 대형석기(大形石器)


남부시베리아와 몽고, 북만주일대 평원지대에 걸쳐 구석기시대말기부터 신석기시대까지 약 1만년이상 작은 돌을 깎아 수렵과 어로에 활용한 세석기문화가 전개되고 있었다.

세석기문화의 지역하한선은 중국북부지역에서 농경문화의 상한선과 연결되고 있다. 중국북부지역과 발해연안, 요동반도, 남만주일대는 농경을 주로 하고 후에 가축을 사육하는 대형석기 위주의 신석기문화가 환기 1,000년(B.C6,000)경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는데, 차츰 세석기 전통을 융합하면서 신석기시대 주변지역의 중심문화권으로 발전해 가고, 북만주 흑룡강과 연해주지역에만 세석기전통이 남게 된다.

두 문화는 지역적으로 뚜렷이 구분되고 있는데 수렵생활위주의 구석기전통의 세석기문화가 새로 등장한 신석기계통의 농경문화에 대체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발해북안, 만주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내몽고 흥륭규(興隆珪), 요녕성 심양 신락(新樂)하층, 요동반도 남단 소주산(小朱山)하층 등의 유적은 방사성타소연대측정에 의해 7천년전의 유적으로 밝혀졌다. 특이한 것은 요동반도지역의 신석기문화 유적에서는 소형의 세석기전통이 보이지 않는데, 내몽고 흥륭구(興隆珪)나 심양의 신락(新樂)하층 유적등 내륙의 산간지대에서는 세석기전통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북쪽인 내몽고 임서(林西), 만주 송화강상류 눈강일대 초원지대에는 세석기유적이 다수를 점하여 하북성북부지역과 요동반도남부, 한반도서북부 일대가 대형석기(金助,金産)위주의'之'자 '人'자문 토기문화를 이루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之)자문 토기


기하문토기의 시발은 세로로 점을 찍다시피한 문양에서 점차 빗살처럼 빗어내리는 형태로 변하다가 아무르지역으로 이동한 세력권에서는 어로의 지역성을 살려 그물망무늬가 채용되고 발해만지역에는 `之’자 문양이나 기하문으로 변하는 것이다. 아무르지역에서 북만주로 남하하면서 기하문양은 꽃을 피워 다양한 기하문이 시문되고 발전되어 송화강과 눈강유역에서 청동기시대로 접어들며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기하문토기는 처음 밑이 둥근 형태로 바이칼지역과 만주를 거쳐 한반도서북부 한반도남부 및 일본에 영향을 주고 아무르강 유역의 그물무늬는 북만주를 통해 한반도 동북부에 전파되게 된다. 일본의 승문(새끼줄무늬)은 빗살계통이라 보기 보다는 그물문양의 시문방법처럼 토기표면에 찍어서 흔적을 남기는 형식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환기 1,000년경의(B.C.6,000)의 고온다습한 기후로 발해연안에는 신석기문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는데 '之'자 '人'자 문양의 빗살무늬계통 토기를 특징으로 하는 농경문화였다. 지자는 번개를 형상화한 것이고 하늘과 땅의 만남을 상징한다.

'之'자 '人'자문을 '연속고선문(延續孤線紋)'이라고도 하는데, 심양이나 내몽고 등지의 연속고선문계 토기문화와 연계하여 발달된 신석기문화를 꽃피우는 단계가 바로 후대의 배달문화로 추정되는 '홍산문화(紅山文化)'이다.

신락하층문화에서 나타나는 토기상의 갈 지(之)자 무늬는 중국 동북지역의 홍산문화, 부하문화(富河 文化), 신개류문화(新開流文化) 및 대련(大連)의 토성자(土城子), 곽가장(郭家庄)유적에서도 보이며, 하북의 안자산(安磁山), 하남 신정(新鄭)의 배리강(裴李崗)유적지에도 보인다. 최근에 발견된 편보유형 (偏堡類型; 심양 新民의 편보)은 신락하층문화의 윗쪽에 있는데, 이것은 편보유형과 신락문화가 계승관계라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지자문 토기는 당시까지 육지였던 황해를 둘러싸고 배달 문화가 퍼져나간 흔적이다. 이상 세석기와 지자문토기의 분포로 보건데 시기적 요인보다는 지역적 요인에 의해 구분되어 이해 되어져야 할 필요성이있다. 세석기문화는 삼림초원 수렵문화의 산물이므로 남만주일대의 농경문화지대에는 그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중국의 발해북안 신석기문화는 대륙의 세석기문화 전통과 독자적 구석기문화 전통을 이어받아 성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 결론

중국학계에서는 현재 신석기시대를 조기(早期)·중기(中期)·만기(晩期)로 구분하고, 다음 단계로 동석병용시대(銅石倂用時代)를 설정하여, 조기·만기로 구분하는데 환기 3700년경(BC 3500)을 중요한 분기로 삼는다. 이는 취락유적지나 주거지, 묘장습속 등을 통해 비교적 평등한 사회양상을 보이면 신석기시대로 분류하고, 빈부의 분화와 사유관념, 계층적 요소가 보이면 동석병용시대이후로 분류하는 것에 따른 것이다.

바로 이 시기가 환국과 배달국의 교체시기인 것이다. 모든 유적이 이 구분에 맞아 떨어지지 않지만 대체로 환국과 배달국의 교체시기에 맞추어 커다란 문화적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환국의 문명으로 비정되는 구석기말기부터 신석기 초기의 문화는 급작스런 기후의 변화로 이지역은 사막초원지대로 변하게 되고 적봉을 중심으로 한 내몽고일대의 신석기시대문화는 쇠퇴하게 된다. 어쩔수 없는 민족의 이동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