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사의 기원, 배달국( B.C 3898-2333)

 

 

     동서 인류의 아버지 문명국인 환국의 역사는 크게 다음과 같이 전후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 환국-- 나반과 아만 이후

    후기 환국-- 1만년 전 이후의 문명시대

 

    인류 시원문명의 축을 전환시킨 동서 사대문명권은 본래 환국의 12나라로부터 모두 분기해 간 것 이다. 그리하여 "신교 신앙과 원시 신교세계관"을 그대로 가지고 흘러 들어가서 세계의 각 지역 문명 에 고대문화 생성의 뿌리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환웅 성자의 동방 백두산 문명 개창

 

-동서 문화가 분화되는 계기- 한민족의 동서양 개척시대

 

 환국 말기 전세계 기후변동이 시작된다. 북아메리카,중앙아시아 초원의 기후변동으로 인한 사막화 및 인구의 증가와 식료의 위기는 인류에게 새로운 정착지를 개척하도록 강요하였다. 또한 사회 성격에 변화가 일어나서 외형적으로는 여러 부족들이 연맹체를 형성하여 부족집합사회가 출현하게 된다. 연맹부족들 가운데 가장 세력이 강한 부족이 최고 지배부족이 되었으며 그 부족의 족장이 그 사회를 통괄하는 추장이 되었다.[최태영,이병도, 한국 상고사입문, p31] 

 

  

 환국말기인 약6천년 전 환국의 대이동 때, 평소 동방에서 원시생활을 하던 인간을 구제하고 싶은 꿈을 간직해오던 환웅(桓雄) 천황(天皇)께서는 환인(桓因)의 명을 받고 제세핵랑군이라 불리는 동방문명 개척단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백두산: 삼신산)으로 오셨다.

 

   배달환웅이 동방 백두산일대에 문명을 개척할 당시 그 지역에는 토착민이었던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이 살고 있었다. 즉, 배달국은 환웅께서 이 웅족과 호족의 협력으로 결합(부족연맹)하여 건국한 것이다.

 

이 두 족속은 환웅께 하늘의 계율을 따르는 밝은 백성(桓族)의 일원이 되기를 간절히 구하고 3·7(21)일간의 수도생활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때 웅씨족은 마침내 순종하여 광명의 백성(桓民)으로 교화되었고, 사납고 약탈에 능한 호족은 교화에 실패하여 사방으로 유리되었다.

 

  도읍은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神檀樹) 밑의 신시(神市)에 정하시고 나라이름은 ‘배달(倍達)’이라 하셨다. 배달건국의 창세이념은 환인으로부터 내려받은 ‘홍익인간(弘益人間) · 재세이화(在世理化) · 광명개천(光明開天)’의 3대정신으로 정하시고, 토착족인 웅족, 호족을 융합하여 교화하였다. 이 배달국은 제1대 배달 환웅으로부터 제18대 거불단 환웅까지 1565년간(기원전 3898~2333년) 지속되었다.

 

  배달국은 인류 시원문명국가인 환국의 환인천제(桓因天帝)의 정통정신을 유일하게 계승한 장자국이다. 그 이유는 환국의 마지막 환인이자 7대 지위리 환인으로부터 정통의 표시인 천부(天符)와 인(印) 3개을 받았고, 명의 사상을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이다. 우리 한민족을 반만년 배달민족 또는 배달의 후예라고 하는 것은 바로 환웅천황의 신시배달 건국의 역사적인(실제 있는) 사실에서 유래된 것이다.

 

 <주요 단어>

 

배달(倍達) 밝달에서 유래됨, 한민족을 배달겨레라고 하는 이유.

환웅(桓雄): 제정(祭政)일치 사회의 정치지도자겸 종교 지도자의 직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큰 스승(桓雄稱大雄天,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을 말하며,부처를 모신 법당을 대웅전(大雄殿)이라 하는 것은 여기서 유래(원래:환웅전) 되었음.

 

 

-서자의 의미: 중국 최초의 근대백과사전 [사원]에는 태자의 스승, 고관벼슬을 의미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당나라 유인궤의 벼슬을 좌서자로 기록

 

-태백산으로 이주:중국에도 태백산이 여러군데 산재하다. 신시배달 건국이후 중원으로 이주한 흔적

 초기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질그릇의 형태를 보면 초기의 전형적인 것들이 백두산 주변에 분포되어있다.[한국 상고사 입문, p31]

 

-천부인 3개: 천부와 인

 

-홍익인간: 홍익인간은 배달국의 건국이념이니 단군과는 관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