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건강이다](29)부실한 표본관리…種이 사라진다



식물의 탄생부터 소멸까지를 기록한 표본 없이는 생물 다양성 보존도 공허한 주장에 머물고 말 것이다. 제6회 산림문화작품전 입선작 김명운씨 ‘새희망’.

기록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대대로 그 기록에 소홀히 해왔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생물자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생물자원의 기록이라 하면, 어떠한 생물종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즉 그 존재 유무 사실 자체에 대한 기록이 첫번째일 것이며, 두번째로 그 생물자원들은 과거에 어떻게 우리들과 인연을 맺어 활용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적인 기록들은 단순한 말이나 글이 아니라 이를 증거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기록이 필요하다.

기록들은 여러 형태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그리고 1차적으로 먼저 떠오르는 기록의 수단은 바로 글일 것이다. 수많은 세월 동안 살아온 민족의 역사 역시 글로 남아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도 글을 쓴 사람들의 시대적 배경에 따라 사실이 왜곡될 수 있는 소지가 많듯이 생물종 역시 마찬가지이다.

식물의 경우를 들어보자. 옛 사람들은 식물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해결하고 수많은 병을 식물을 통해 다스리고 생활 곳곳에 이용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소중한 지혜와 정보들은 기록이 아닌 구전을 통해 생활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문명의 변화로 조상들의 그러한 소중한 지혜와 지식이 한동안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단절되어 왔고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소중한 지식들은 드문드문 나타나는 기억의 편린들 속에서 하나씩 끄집어 내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식물로 병을 치료하던 기록만 정확히 있어도 이를 근거로 의학적인 지식들을 증명하고 개발하여 수많은 신약들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인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 어떠한 생물종들이 이 땅에 살아왔는지에 대한 가장 학술적이고도 중요한 기록은 무엇일까? 바로 표본이다. 사실 한 식물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문자도 시대에 따라 달라짐은 물론이고 한 식물을 두고 하는 말이 시대나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다 보니 설령 문자기록이 있어도 그 식물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도 증거할 수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동안 어떤 책에 노나무와 벌나무란 나무들이 등장하고 그 나무들이 수많은 불치병들을 고쳤다는 기록이 나와 있었다. 사실 병이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라 그 나무들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대단했는데 현재 식물 중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식물이 없으니 아무도 정확히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말 할 수 없어 추측만이 난무했다.

지금 강원도 지역에 가면 곤드래밥이란 것이 유명하다. 하지만 그 곤드래란 식물은 식물도감에 나오지 않는 지방명이니 어떤 식물인지를 알 수 없어 문의가 많았다. 하지만 곤드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아주 어린 싹만 알고, 이 식물의 이름을 정확히 말해줄 수 있는 식물학자들은 싹만으로는 식물을 정확히 식별할 수 없어, 결국은 이 식물을 꽃이 필 때까지 키워 2~3년 만에 곤드래가 고려엉겅퀴임을 찾아냈다.

따라서 생물종의 기록이란 단순한 문자가 아닌, 보다 결정적인 증거들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표본(標本)이다. 생물표본이란 건조 등의 방법으로 생물을 그대로 오래 보전하는 생물종 기록이다. 한 장의 표본은 100가지의 말과 기준이 바뀌어 부정확해진 문자기록을 증거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록이 된다.

한 예로 우리나라의 나라꽃은 무궁화이다. 그런데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은 무궁화에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는데 우리나라에 이 식물의 자생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무궁화 분포의 중심이 더운 나라에 있다보니 무궁화가 핏줄부터 우리 꽃이 아닐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무궁화란 이름은 비교적 근세에 붙여졌고, 예전에는 목근화라고 했다. 아주 오래된 중국의 기록에도 동쪽에 흰옷 입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 목근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지만, 1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 한자기록의 그 식물이 바로 지금의 무궁화라는 명확한 증거가 되지 못하니 무궁화 자생지 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만일 적어도 수백년, 아니 100년이라도 된 한 장의 표본만 있어도 우리는 아무 주저없이 진정한 우리꽃 무궁화를 말할 수 있을 텐데 싶어,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한 장의 표본은 그 식물이 언제 어디서 살아왔는지에 대한 시간·공간적 기록이다. 그 식물을 표현하는 말이나 문자는 변화할 수 있지만 한 장의 표본기록만 남아 있다면 언제나 정확히 증거할 수 있다. 생물 다양성을 아무리 외쳐도 그것을 증거할 수 있는 표본기록들이 표본관에 쌓여 있지 않으면 이는 공허한 주장이 될 것이다.

한 생물종이 이 땅에 살고 있음이 처음 알려지는 것은 한 학자가 이를 발견하여 특징을 기재하고 이름을 붙이며 그 종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실을 증거하는 표본을 남겨야 비로소 실체를 인정받는다. 이러한 표본을 특별히 기준표본 혹은 모식표본이라고 한다.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증거기록들을 소홀히 하여 전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특산식물의 기준표본을 보려고 해도 다른 나라의 표본관을 유람해야 하는 뼈아픈 현실에 있다.

그래서 오래된 표본관에 수백년 된 표본기록들이 남아 있는 선진국의 표본관이 부럽다. 더욱이 과학이 발전하면서 케케묵은 표본을 단순한 시공간적 기록과 생물종 분류의 기초증거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들이 그 속에서 나오고 심지어 DNA 추출로까지 이어진다. 죽은 생물이 살아있는 유전자원으로 이어지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묵은 표본의 중요성은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이어질 듯 하니, 우리의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문제는 지금도 생물종 연구기반인 이러한 표본을 통한 증거기록을 소홀히 한다는 점이다. 얼마전까지 표본의 수장은 순수과학을 하는 대학에서 주로 맡아왔지만 지금은 대학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기반을 쌓아야 하는 표본의 제작과 수장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나마 얼마 남아있지 않은 표본마저도 손실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기반연구에 필요한 표본관리는 이제 국가가 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처음으로 산림청 국립수목원에 산림생물표본관이 만들어졌다. 지금이라도 생물자원조사엔 반드시 이를 증거하는 확증표본이 만들어지고, 그리고 그 표본들은 국가의 안전한 표본관에 수장되어 수백년 이어지며 이 땅의 생물종을 증거하고 언제라도 연구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되어야 한다.

식물이나 곤충을 좋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식물을 캐어 집에서 혼자 보거나 간직하고 사진 찍어 좋아함을 나누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식물이나 곤충 애호가들이 제대로 된 한 장의 표본을 만들어 여러 학자들이 활용하도록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표본관에 보내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 이를 데 없다. 이는 개인의 생물에 대한 사랑이 한 단계 승화하는 것이고, 표본에는 그 생물종을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함께 남으니 사실 자신의 이름을 수백년 이어지도록 남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유미|국립수목원 생물표본과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