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아니 질문을 바꾸어서 역사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정치인이겠습니까? 아니면 경제영웅들입니까? 스포츠 스타나 탈렌트 일까요? 가수나 아나운서 같은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겠습니까? 아니면 변호사나 검사같은 사람들이겠습니까? 기자가 역사의 주체일까요? 아니면 김일성이나 김정일 같은 자가 역사의 주인이겠습니까? 피노체트나 부시 같은 자가 역사의 주인일까요?

 

 권력자나 금권자나 명예자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역사의 주변인 입니다. 원래 나무를 보면, 나무의 본체되는 줄기는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고, 오히려 지엽적인 줄기되는 부분이 더 화려해 보이잖습니까?

 

 그들은 역사의 주체 또는 역사의 본체가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게끔 임명해 놓은 보조역 입니다. 과거 보조역에서는 그것이 하늘의 뜻과 합치되었더랬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자신의 명예와 부 자기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세상은 얼마만큼 오래갈까요? 우리는 20세기와 21세기의 대한민국 한반도에 국한시켜서 살펴보더라도 역사의 주변인들이 또는 역사의 변수들이 몇번 갈렸다고 해서 역사의 근본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확인한바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들이 천년이 더 갈까요? 아니면 만년이 더 갈까요?

 

 물론 앞으로 역사 대세가 넘어가는 상씨름을 구경만 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역사의 한가운데에 뛰어 들어서 역사의 물줄기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직접 그리고 노련하고 세련된 시각으로 관찰하지 않는 이상은 역사의 대세가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구경꾼의 시각과 직접 상황을 맞딱들이는 현장에 있는 사람과는 사건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현실감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사건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거기서 역사의 변수들이 나타나는 것이지, 역사의 구경꾼들에 의해서 움직여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문제는 그렇게 되면, 역사 속에서 늘 전형적인 모습들이 모여주었듯이 대세에 휩쓸리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대부분을 잃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또한 대세에 휩쓸려 목숨을 잃기도 했던 것이 역사적 상황들이었습니다.

 

 지난 1차 세계대전(1914~1918)과 2차 세계대전(1936~1945)이후 또 한반도에 국한되기는 하였으나 실질적인 작은 세계전쟁이었던 한국전쟁(1950~1953)이후 베트남전쟁이나, 중동전쟁, 걸프전,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등 국지전은 있었지만, 큰전쟁은 없었습니다. 거의 반세기 가까운 동안 평화가 지속되었고, 평화가 지속되었다는 것은 전쟁의 물자도 많이 쌓였고, 기술이 발전하여 예전보다 더 큰 보이지 않는 위험이 준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도 합니다.

 

 다시 처음의 역사 주인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누가 역사의 주인이 될 것이냐하는 문제도 돌아가기로 합시다.

 

 역사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것은 곧 이 세계의 수호자는 누가 될 것이냐 하는 질문과 같은 질문입니다. 주인이란 존재는 어떤 물건이나 한 세계를 외부로 부터 지켜내고, 옳바른 자리에 자신의 본래 목적대로 움직여 나갈 수 있도록 관리하고 유지 보수하는데 존재의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역사앞에 책임을 지는자가 바로 주인입니다.

 

 권력자가 아무리 갈리고 금력자가 아무리 갈려도, 결국은 역사의 물줄기는 역사의 주체에 의해서 흘러가듯이 주인이란 존재는 역사의 변수들에게 놀다가고 즐기다갈 자리를 제공하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결국 끝에가면, 날이 저물면 손님들은 물러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역사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흔히 미래의 권력을 쥐게 될 자에 대해서 말하기를 미래는 준비된 자의 것이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유비무환이라는 것이죠. 일시적 쾌락과 타협하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계발하고 대세를 관찰하며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IMF사태에서 보듯, 또 오늘날 전 세계 각국의 청년실업 장년실업, 노년실업 문제에서 보듯, 변화에 준비되어 있는자는 변수가 아닌 상수로서 늘 살아남습니다.

 

 역사의 구경꾼은 주인이 될 수 없고, 따라서 늘 역사의 변수로만 남아 있습니다. 구경꾼에서 직접 현장에서 부딪히는 자가 될때는 이미 늦다는 얘깁니다. 늘 어떤 사건이든 해결될 수 있는 시점을 찾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해결하는 사람이 사건을 지배하고 현장을 지배합니다.

 

 역사의 현장이라고 다를까요?

 

 개벽실제상황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이 새판을 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새판이 세계의 중심 모든 원한과 시비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인 한반도에서 시작되고, 전 세계의 모든 시비의 문제가 한반도로 부터 끌러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누가 있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가 휘몰아쳐 판을 망쳐 놓기전에 어떻게 준비할 거냐 하는 것입니다.

 

 선천의 모든 시기가 한반도에서 불붙기 시작하여 전 세계로 번지는데 인간으로 오신 참 하나님이신 상제님께서는 "전쟁은 병으로 막는다"하셨습니다. 그리고 "병주고 약준다는 말을 모르느냐"하시며, "약은 태을주니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쟁과 병법을 멀리하고 비열한 듯한 의통을 알아두라"하셨습니다. 또 "날이 저물면 판과 바둑은 주인에게 돌아간다."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남조선은 남은 조선사람이라는 말이니 그들을 잘 가르치라"하셨습니다. 남조선 배 도수를 보셨고, "짐을 채워넣어야 떠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남조선 배를 타야 한다는 말입니다.  4천년전 우가 9년 홍수로 인한 치수사업을 하여야 했을때는 조선의 선인으로 부터 치수의 법을 배워 제방을 쌓고 뚝을 쌓아 홍수를 다스렸지만, 선천과 후천이 교차하는 이 선후천교차기에는 판을 다시 시작하여야 하기에 새판으로서 남조선 배가 만들어졌고, 그 속에서 남조선 배를 배질할 혈식천추 도덕군자들로 구성된 뱃사공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그 역사의 주체가 현실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그 역사의 과정에서 주인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변수가 될꺼냐 역사의 상수가 될꺼냐 하는 것입니다.

 

 집을 짓는데 주춧돌과 대들보 없이 지어지는 집을 보셨습니까?

 

 천지개벽을 할때는 천지집을 지어야 하는데, 천지의 대들보와 천지의 주춧돌이 흔들리게 지어야 하겠습니까? 어떤 집이든 대들보와 주춧돌은 상수이지 변수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