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이란 사건은 우주의 역사가 새로 씌어지는 사건입니다.
 예전에 있던 역사가 종결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시작점이 바로 개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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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핵심 과제는 진리의 사진주 진리의 사체를 만나 얼마만큼의 도를 제대로 전수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곧 어떻게 상제님을 만날 것인가? 어떻게 수부님을 만날 것인가? 어떻게 종도사님을 만날 것인가? 어떻게 종정님을 만날 것인가? 하는 첫번째 과제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이 첫번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개벽을 만날 것인가? 어떻게 도수를 만날 것인가? 어떻게 대전쟁을 맞이할 것인가? 어떻게 괴잘을 맞이할 것인가? 어떻게 지축정립을 맞이할 것인가? 어떻게 후천 선경을 건설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1,2관문만 있는건 아닌것 같습니다. 신앙이 성숙해지고 진리공부가 깊어지면서 처음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했었던 그러나 별로 심각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게 되는 제3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곧 이 세상의 끝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믿을것인가?

 

 상제님께서는 "우리일은 남죽는때 살자는 일이요, 남이 살때 잘도 되자는 일이다"고 하셨지만서도, 중요한건 남도 살리고 나도 살아남는 일입니다.

 

 남과 자신이 살아남더라도 중요한건 "어떻게?"라는 화두입니다.

 

 태모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사람욕심 내지 마라. 옳바른줄 하나 치켜들면 다 들어 오느니라."하셨습니다.

 

 중요한건 진리의 사진주를 만나 도문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또 도문에서 세상 사람들을 많이 입도시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옳바른 과정을 거쳤는가 또는 옳바른 과정을 거쳤느냐 곧 다시 말해 그 과정이 옳발랐느냐 하는 준엄한 신판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씨앗으로 발화하여 싹이 트고 키가 큰 고목이 된다 하더라도, 벌레가 먹고, 잎새에 이는 풍화를 견뎌내지 못하면 열매는 결국 쭉정이가 되고 맙니다. 흔히 비유하는 온실속에서 자란 화초와 들판에서 자란 잡초를 비유하지마는 생명력은 잡초가 훨씬 강력합니다. 모진 비바람을 다 이겨내어야 했고,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을 이겨내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결국은 옳바른 마음을 가져 신앙을 시작하고, 그 초발심을 개벽의 그날까지 견지해 나갈 수 있느냐에 천지사업의 성패가 걸렸다고 하겠습니다. 그 일심이 없다면, 아버지 상제님과 어머니 수부님의 19년 천지공사도 헛공사로 남게 된다는 결론입니다.

 

 천지사업에서는 과정이 옳바르지 못하고 또 결론도 좋지 못하다면, 둘중 어느 한가지라도  문제가 된다면 결국 쭉정이가 된다는 결론입니다. 과정에 있어 불공정이 있고, 불화가 있다면 아무리 나뭇가지에 잎사귀가 많이 달린들, 결국 낙엽이 되어 사라질 것이고, 아무리 나뭇가지 수가 적다 한들 제대로 된 나뭇가지에 제대로된 발육과 성장의 과정을 거쳤다면 제대로된 열매가 달린 겁니다.

 

 결론에 이르러 보면, 중요한 것은 열매의 질이지 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지공사의 마무리 도수에도 이와 같습니다.